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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2002

NRG, 태사자, 원타임 : 또 다른 1세대 남자 아이돌 그룹

by 하이유파파 2022. 12. 13.

아이돌 그룹의 역사를 떠올려보면 일단 1996년 2인조로 데뷔한 '아이돌'이 있었다. 교포 출신에 나이도 형이지만 어려서 뭔가 새로운 느낌은 났지만 주류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바우와우'는 그때도 유치했고 '환상체험'도 중학교 남학생이 듣기엔 비슷했다. 다만 아이돌이라는 단어를 처음 알렸고 그것이 나름 큰 의미라고는 생각한다. 본격적인 남자 아이돌의 역사는 H.O.T. 부터이며 '전사의 후예'보다는 '캔디'가 가요계의 이정표를 꽂았다고 할 수 있다. 성별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단연 96년 최고의 신인인 영턱스클럽이다. 다만 2집부터 벌써 밀렸다. H.O.T. 와 젝스키스 양강 선발대는 1세대 남돌의 역사를 정립했고 당연히 수많은 후발주자들이 특히 97년 후반~98년에 쏟아져 나왔는데 이 시대에 그래도 핫젝과 함께 잘 살아남은 그룹들이 몇 떠오른다.

 

NRG

의견이 좀 다르려나 싶지만 개인적인 3위 그룹은 NRG다. '하모하모'도 이성진의 보컬 때문에 좋아했고, nrg 데뷔 후 '할 수 있어'와 특히 2집 '사랑 만들기'는 진짜 좋아해서 지금도 즐겨 부르는 노래이다. 예전에 반 친구가 내 젝스키스 2집과 자신의 nrg 1집을 바꾸자고 했을 때 심한 욕을 퍼 부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바꾸는 편이 나았을 정도이다. 고 김환성을 정말 멋있어했고 한류 열풍의 시초였고, 2003년 'HIT SONG'의 1위 등이 기억난다. 이성진과 천명훈의 개그 스타일도 좋아했다. 신정환과 더불어 뭔가 촐싹 맞은 그 분위기가 재밌었다.

 

태사자

NRG의 라이벌은 누가봐도 태사자였다. '도'와 'TIME'은 남학생들 노래방 1순위 곡이었다. 다만 2집 '애심'부터 좀 취향에 맞지 않았고 3집의 '회심가'는 나름 좋아했는데 1집의 성공 동력이 오래가지 못했던 기억이다. NRG에 비해 잘 생긴 멤버들이 인기몰이를 했고 그 덕에 길지는 않았지만 큰 인기를 얻었던 태사자이다.

 

OPPA

97년 말 OPPA는 멤버가 8명이나 되었고 데뷔곡 제목과 같이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뭔가 홍보대사 같은 그룹이었다. 그런 점들이 중학교 때에는 덜 대중적인 느낌이었는데 오히려 '그대야 미안해'나 '와요 와요'가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고 잘 먹혔던 기억이다. 지금은 슈퍼주니어와 같이 훨씬 많은 인원도 멤버들을 다 알지만 당시엔 진짜 많아 보였고 유닛 활동을 한다는 발상이 참신했다. 멤버 정명훈이 훗날 코요태 객원멤버로 활동했을 때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었는데 입대를 해서 아쉬우면서도 지금의 3인 체제를 보면 코요태는 지금이 당연한 것 같다.

 

이글파이브

98년 이글파이브는 대니(리치)와 심재원, 론이 확실히 잘했는데 나중에 오징어 외계인만 너무 부각을 시키는 감이 있다. 사실 '궤도'와 특히 2집의 'FIRE'를 참 좋아했는데 이 팀의 군무와 에너지는 정말 대단했다. 리치가 '사랑해 이 말밖에'로 나온 것도 신기했는데 노래를 잘했고 결국 02년을 접수했다는 점들이 참 놀랐었다. 론은 아쉬운 게 이글파이브 시절 정말 멋있는 멤버였는데 솔로 준비가 좀 길었다고 할까 유승준이 정점을 찍은 시점에 카피 캐릭터 같이 나와서 많이 아쉬웠다. 심재원은 이 시절에도 춤을 잘 췄고 그래서 블랙비트에 누구나 기대를 걸었지만 너무 빨리 접은 것은 생각지 못한 행보였다.

 

원타임

98년 말에 데뷔한 1TYM은 97, 98년 여러 남자 아이돌들을 거쳐 대형 기획사에서 등장한 대형 신인이었다. 데뷔곡 원타임도 조금 힙했고, 00년 이후 'ONE LOVE' 같은 노래는 진짜 멋이 넘쳤다. 원타임을 보며 대형 기획사의 힘이 중요 해지겠구나를 느꼈다. HOT와 젝스키스, SES와 핑클과 같은 큰 그룹이 되겠구나를 데뷔부터 좀 느꼈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겠지만 99년부터는 확실히 기획사의 시대가 왔다고 할 수 있다.

 

98년에서 99년으로 넘어가는 시점이 아이돌의 역사에서도 중요했다고 본다. ART 같은 그룹은 뭔가 많이 나왔고 밀어주는 느낌이었지만 그뿐이었고, 유비스와 팬클럽, 우노도 그랬다. 데뷔만 시키면 되는 분위기가 아니었고 이는 IMF와 맞물린 점도 기인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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