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은 중2 때였는데 1학기 중간고사 이후 5월 말인가 6월 초에 경주로 수학여행을 갔다. 버스에 오래 타야만 했기에 그즈음 유행했던 노래를 원 없이 들을 수 있었다. 친한 친구가 다마고치를 가져와서 부러웠던 기억이 갑자기 난다. 우리 반은 네 개의 방을 썼는데 몰래 술 마시는 방, 판치기 하는 방, 노래 부르는 방, 만화책 보는 방으로 나뉘었다. 참 취향 잘 나뉘고 좋았다.
이때 버스 등에서 들렸던 노래를 떠올려보면 안재욱의 forever가 1위여서 자주 나왔고, 업타운이 데뷔해서 다시 만나줘도 나왔고, 언타이틀의 날개는 제일 인기가 많았었다. 자자의 버스 안에서는 좋아했던 노래고, 솔리드의 천생연분은 누가 좋아했는지 테이프에서 같이 나왔다.
우리 학년은 10갠가 12갠가 학급이었는데 남자반 6, 여자반 6개로 공학이지만 두 개 학교와 같았다. 이 때 둘째 날 저녁에 장기자랑을 했는데 남자반은 5개가 날개를, 1개가 전사의 후예로 춤을 췄고 여자반은 6개 모두 유피의 뿌요뿌요였다. 같은 무대를 6번이나 봐야 해서 지겨웠다지만 이게 바로 이즈음 중학생의 판도였다. 그런데 정작 MVP는 작년에 같은 반이었던 끼 없어 보이는 친구가 배반의 장미로 좌중을 휩쓸고 엄청난 인기를 얻자마자 전학을 갔다. 그런 일들이 떠오른다.
생각해보면 장기자랑으로 어울리는 노래는 95년 같으면 룰라의 날개잃은 천사가 있었고 96년에는 오히려 거물급들이 많았지 이런 무대에 딱 알맞은 노래는 없었다. 그런데 96년 1024로 나름 괜찮게 데뷔한 유피가 정말 생각지도 못하게 뿌요뿌요라는 여학생들 취향저격의 노래로 등장했고, 솔직히 단기간 임팩트로는 진짜 엄청났던 기억이다. HOT는 성공적으로 데뷔한 남자 아이돌이었고 이지훈, 이기찬 역시 남자 고등학생 발라더였고 인기도 많았지만 뭐랄까 아직 1세대 걸그룹이 나오기 전인 상황에서 영턱스클럽 정도였던 기간에 등장한 뿌요뿌요는 확실히 이런 측면에서 팬층을 급속도로 늘릴 수 있었다.
여름방학의 주인공은 해변의 여인의 쿨과 도시탈출의 클론, 그리고 DOC와 춤을로 96년 여름의 아쉬움을 걷어낸 DJ DOC가 있었지만 유피의 바다도 정말 좋았고 인기도 많았다. 유피의 2집 앨범은 큰 성공이었고 앞으로 롱런하길 바랐던 유피였다. 그러나 너무 빨리 컴백해서 결국 롤러코스터 같이 식어버렸고 김용일의 탈퇴와 정체성의 혼돈 등으로 99년 4집을 끝으로 사라져 버린다. 난 사실 3집의 밝은 세상은 지금도 즐겨 듣는데 이 앨범 자체가 2집 우려먹기 느낌이 너무 대놓고여서 많은 팬들이 실망했을 것이다.
이 90년대 후반의 가요계 호황은 역설적으로 기획사의 능력 미달들과 맞물렸는데 그래서 사실 슈가맨이라는 프로를 정말 재미있게 봤지만 다시 출연해서 근황을 이야기하는 옛 가수들의 스토리들은 많이 아쉽고 안타까웠다. 출근길 매일 듣는 유피의 뿌요뿌요와 바다, 여름이 끝나가며 떠오르는 97년의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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